Friday, January 30, 2015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빛을 가진

 
 
 
운이 좋았다. 당첨된 것보다 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덕질은 타이밍, 아니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덕분에 오늘 하루 공기가 몹시 달콤했다
아, 세상은 아름다워라
 
스페이스 공감의 작은 무대와 그 공기는 여전했다 스탠딩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더웠고 온 몸에서 땀이 났고 축축한 얼굴에 자꾸 먼지가 붙었고 때문에 카메라가 꽤나 신경쓰였다 처음 한 두 곡은 가볍게 리듬만 탔으나, 공연장이 뜨거워질수록 후끈거리는 몸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몰라, 카메라 다 좆까!' 하는 패기 넘치는 심정으로 마구잡이로 몸을 흔들기에 이르렀다 미친년 같은 내 모습이 공중파 방송에 등장할 생각을 하니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괜찮아, 아무도 안 볼 테니까.
 
 
오늘의
스무 곡인듯 스무 곡 같은 열한 곡의 셋리스트
 
스크래치
스크래치
저글링
미늘
작은인질
작은인질
프레임
프레임
프레임
오이디푸스
변신
변신
거울
씽크홀
꼬리
프레임
프레임
로스트
로스트
 
(위의 중복된 글자들은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첫 곡부터 삐걱거렸다.
전규호의 실수, 하현우의 실수, 나중에는 이정길의 실수까지. 무엇보다도 하현우가 가사를 몇 번이고 틀릴 때는 퍽 놀랐다 원래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관객 중 누군가 '사람 같아요' 하고 외쳤고 모두들 환호했다 하현우는 씩 웃으며 특유의 능글거리는 말투로 공연을 이었지만 긴장한 게 다 보였다 나도 덩달아 조마조마해졌다 어느 신인 밴드 공연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것 같은, 그런 오랜만의 기분이었다. 멤버들은 누군가 틀릴 때마다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특히 전규호의 눈빛은 정말 심상치 않았다 관객인 나야 그 모습이 웃기고 좋았지만(특히 프레임을 다섯 번이나 들을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점점 낯빛이 흙빛이 되어가는 멤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다
 
 
다른 때보다도
로스트와 작은 인질을 부르다 목에서 쇳소리가 난다며 중단했을 때,
불안해져왔다 문득
단공 때 하현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점점 나이가 들어 오십대가 되면 셋리에서 꼬리를 빼고, 육십대가 되면 싱크홀을 빼고, 칠십이 넘어서는 토들이랑 가비알만 주구장창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였는데, 
오늘 많이 버거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팬들이 롤링스톤즈나 폴 매카트니도 아닌데 그들에게 '만수무강'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따금 윤도현을 보면 이제 저 사람을 더이상 오빠나 삼촌이라고 부를 수 없겠구나, 이제는 정말 아저씨구나, 싶을 때가 있다. 단순한 나이듦을 떠나서 사람이 조금씩 져가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는 때. 특히 최근의 그를 볼 때마다 어떤 쓸쓸한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하현우는 그게 좀 더 일찍 올 것 같다. 다행이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지금은 삼촌에 가까운 오빠, 아니 아저씨에 가까운 삼촌이랄까
 
 
생각해보니 한경록과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쌍둥이 형제가 모두 올해 마흔이다
 
 
 
늙지마요 모두들.
영원히 반짝거렸으면 좋겠다
 
 
물론 당신들의 머리가 하얗게 새도 나는 사랑할 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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