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9, 2015

믿음

 
 
 
아빠는 삼 개월 이상 가는 것이 아니라면 여행을 보내주지 않을 거라 말했다.
 
한 달 반에서 최대 두 달을 생각했던 나로써는 다소 당황스러운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로는 그 정도로 오래 갔다올 만큼 여행 자금을 모을 수 없다고 했더니 돈 문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얼마든지 하고, 유학도 갔다오고 싶으면 고민하지 말고 가라고. 자신의 인생이 이제 점점 풀려가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허세 섞인 말투에 웃음이 났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또 기분이 썩 좋기도 했고.
술 기운 때문인지, 혹은 당신의 딸이 겪게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의기양양해 있던 아빠.
 
 
 
요즘 학원이 잘되는지 표정이 밝아 보인다.
두 달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원생이 서른 명이 넘었다. 학원의 ㅎ자도 모르는 나로써는 그게 어느 정도인 건지 잘 가늠하지 못하겠지만, 여느 학원들에 비해서 꽤 빠른 속도로 모이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별 학생들과 별별 학부모들이 참으로 많다. 정말 영화나 소설에서 볼 법한 이야기들. 아빠는 거의 정신과 의사 수준으로 그들을 상담해준다. 내가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람 참 괜찮은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아빠가 내리는 처방은 별 거 없다. 학부모들에게 한 마디 하는 것 뿐이다. 본인 아이를 좀 믿으라고. 믿고 지켜보라고.
 
 
그는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데 (나뿐만아니라동생이나다른사람들에게도마찬가지겠지만) 지금 가장 생각나는 건 중3 때다. 당시 나는 엄마와 담임 선생님의 압박으로 예고 진학의 반대에 부딪쳤는데,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빠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자기는 내가 당장 축구선수를 하겠다고 해도 지지할 거라고. 그러니 주변이든 부모든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말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뭐, 지금 생각하면 극히 사소한 일이고 별 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 말이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막막하고 깜깜한 방 안에서, 짧은 전화 통화가 얼마나 안도감을 주던지.
 
 
그리고
부모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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