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을 헐값에 팝니다."
1호선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늘 잡상인 한 두명 쯤은 마주치게 된다. 그네들은 허리띠나 이어폰, 본드 등을 높이 쳐들고 큰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한다. '신사숙녀 여러분! 아주 좋은 물건을 값싸게 드리겠습니다.' 잡상인들의 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매우 좋은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한 번 써보시라고 '싼 값'에 팔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객실 내에서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판매되는 물건은 결국 그 값어치 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다.
케이블 TV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밴드가 학교 축제에 '무료 출연'을 하겠다며 발벗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록의 부활'과 '건강한 축제문화'를 위해서라는데, 어째 반응들이 영 시원치않다. '록'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역 밴드 뮤지션들 중 다수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클래식의 대중화'에 '무료 공연 (혹은 저렴한 비용의 공연)'이 어느정도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방법론을 '밴드의 대중화'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알다시피 오케스트라와 같은 클래식 공연의 경우 관람료가 저렴하지 않다. '비싼 비용'이라는 장벽 때문에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어, 클래식이 그동안 '고급문화'로 치부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밴드 공연의 경우 사정이 아주 다르다. 5천원 대 공연부터 3만원 대 공연까지 있고, 보통 1-2만원 대가 일반적으로 형성된 가격대다. 그러니 가격을 낮춰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씬과 합의되지 않은 '가격 후려치기'는 밴드 문화를 지하철 잡상인이 팔아재끼는 '싸구려'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저런 것을 다 떠나서, 문화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료로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은 것이 아니겠냐 묻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다. 글쎄, 문화계에서까지 '치킨 게임'이 횡행한다면, 결국 '무료 공연'을 하러 갈 차비조차 없는 신인 밴드들은 고사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결국 밴드씬에서 '신선함'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될 것이 자명하다. 문화 소비자들도 마침내는 '무료 공연'을 서포트 해줄 수 있을만한 기획사에 소속된 밴드의 공연만 볼 수 있게 되니, 결론적으로는 다양성을 해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본인들의 몸값을 낮춰 '을(乙)'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덕분에 다른 밴드 뮤지션들은 '수퍼을(乙)'이 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홍대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밴드들도 음원 수익만으로는 교통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판이다. 공연비로 받는 금액 역시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씬을 지키며 '밴드맨'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누가 '부활'시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에 와서 정말로 '록의 부활'이 필요하다면, 그건 기획사의 자본력에 기댄 밴드가 아니라 밴드 씬의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인디밴드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여야 할 일이다.
몇 년 전, 해당 밴드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보여서 참 좋았었다. 본인들이 '투잡'을 뛰면서도 음악을 계속 하려 했던 그 열정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과거의 자신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마이너 밴드들의 마음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입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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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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