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6

젊은 여자



-세상에 예쁜 여자가 너무도 많다
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열차에 올랐다
 
 
충무로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여자를 보았다 무릎이 조금 넘는 기장의 스커트를 입고, 허리께가 파인 갈색 롱코트에 예쁜 단화를 신고 있었다. 목을 두어번 감은 회색 머플러는 골반 아래로 내려왔다 가죽 클러치백을 든 손 위로 단정히 정리한 손톱이 눈에 띄었다 조금 어두운 갈색의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보이는 콧망울이 맑았다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콧대였다 알맞은 색의 검정 스타킹이 다리를 감고 있었다
 
블로그도 그러하지만 관음하는 트위터의 계정들이 몇몇 있다 물론 텀블러도 마찬가지지만. 굳이 필터를 끼우거나 보정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맨 얼굴들, 사진들. 애쓰고 고민하지 않아보이지만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담백하고 예쁜 문장들, 맘에 드는 상념들. 봄이 온다거나 비가 내린다거나 하는 별거 아닌 조잘거림임에도, 그저 예뻐서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곤 한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그들을  '홍상수 영화에 나올법한 여자'라는 명칭으로 묘사한다.  <우리 선희>의 정유미라던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정은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김민희를 떠올리게 하는. 이를테면 풀꽃같은.
 
나는 화장하지 않은 맨 눈을 부끄러워하며 이마에 난 작은 뾰루지를 부끄러워하며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아름다운 그 여자를 훔쳐봤다 어딘가 쓸쓸하지만 사려깊어보이는 눈빛을, 냉랭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대할 것 같지 않은 표정을 조금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없음에 아쉬워하며 끝끝내 열차에 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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